반지의 제왕 작가, 존 로널드 로얼 톨킨, 언어학 교수로서 인공적인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다. :: 예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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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지의 제왕 작가, 존 로널드 로얼 톨킨, 언어학 교수로서 인공적인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다.
    책 이야기 2017. 7. 2. 17:39

     

    반지의 제왕 작가, 존 로널드 로얼 톨킨, 언어학 교수로서 인공적인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다.

     

    존 로널드 로얼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J. R. R. 톨킨, CBE, 1892년 1월 3일~1973년 9월 2일)은 영국의 영어학 교수이자 작가이다. (톨킨의 가족들은 'Reuel'을 '루엘(ROO-el)'이라고 발음했다.) 그는 옥스퍼드 머튼 대학에서 1925년부터 1945년까지 고대 영어학 교수로, 1945년에서 1959년 사이에는 영어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평생 써 온 소설을 통해 인생 후반에 큰 명성을 얻었다. 톨킨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과 관련한 일을 하기도 했으며, 언어학 교수이기도 했다. 그는 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 그의 작품 내에 인공적인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톨킨의 대표적인 인공어로는 꿰냐신다린이 있다.

    톨킨은 인간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다른 종족을 만들어 내었고, 이로써 현대 판타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크게 발전시킨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반지의 제왕》 삼부작과 《호빗》 등이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 땅에 대한 작품들의 지속적인 인기와 영향력은 그의 명성을 끌어올려 그를 현대 판타지(혹은 하이 판타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하였다. 또한 그는 베오울프가웨인 경과 녹기사 등에 대한 많은 비평도 남겼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 내의 문학 토론 모임인 잉클링스의 멤버였으며, 같은 잉클링스 멤버였던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인 C. S. 루이스와는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톨킨은 1972년 3월 28일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았다. 톨킨은 1973년 9월 2일 죽었으며, 그의 사후에는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아버지 톨킨의 집필을 정리하여 《실마릴리온》을 비롯해 많은 책을 출간하였다.

     

    어린시절

    톨킨은 189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블룸폰테인에서 태어났고 네 살때 영국 버밍엄으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는 톨킨이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의 어머니는 외가 모두가 열성적인 성공회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교회로 회심하였다. 톨킨의 어머니가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하자 성공회(Anglican) 신자였던 친척들은 톨킨 일족에게 등을 돌리고 경제적 지원을 끊음에 따라 톨킨 모자는 가난하게 생활하게 된다.톨킨의 어머니는 톨킨이 12살 일 때 당뇨로 죽었지만, 톨킨은 그의 나머지 생애 동안 그의 어머니가 믿음으로 인해 순교했다고 생각했고, 이는 그의 신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톨킨의 독실한 신앙은 성공회 신자인 C.S.루이스와의 대화에도 깊이 베어 있으며, 그의 작품 속에도 다양한 상징과 가치로 나타난다. 10대 시절 톨킨은 킹 에드워드 스쿨과 성 필립 문법학교를 다녔다.

     

    청년기

    1911년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에는 고전을 공부하지만 중간에 전공을 바꾸어 영어언어학을 학사 취득하고 1915년 졸업한다. 톨킨이 에디스 브렛을 만나 처음 사랑에 빠진 것은 그가 16세일 때였으며 당시 에디스는 톨킨보다 3살 많았다. 에디스는 개신교였기에 이를 좋지 않게 생각한 당시 톨킨의 후견인 모건 신부는 톨킨이 21살이 되기 전까지 그들이 만나는 것을 금지하였고 톨킨은 이에 따랐다. 톨킨은 21세가 되던 생일날 톨킨은 에디스에게 청혼하는 편지를 쓰고 결국 둘은 1916년 3월 22일 결혼하게 된다.

     

    세계 1차대전 시기

    톨킨은 제1차 세계 대전 시작 후 1916년 영국군에 지원하여 참전한다. 이제 막 결혼한 대학졸업생이었던 톨킨은 1차대전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죽는 슬픔을 겪게 된다. 또한 톨킨도 전장에서 얻은 열병으로 인해 1916년 11월 후방으로 후송되고 18개월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으며  병을 회복하는 기간 동안 북유럽의 신화와 민간 전승에 기반한 우화의 시리즈인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The Book of Lost Tales)을 쓴다. 요양중인 이무렵 톨킨은 에디스와 함께 독미나리 숲을 거닐다가 에디스가 톨킨을 위로하는 춤을 추었고 아내의 귀여운 행동에 영감을 얻어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에 반영하여 설정하였고, 그것은 베렌루시엔이다. 톨킨은 그의 아내를 종종 "나의 루시엔"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대학교수 시절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이후, 톨킨은 잠시 동안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에 관련한 일을 했다. 그가 주로 담당한 것은 알파벳 'W'로 시작하는 언어의 기원과 재해석에 관한 것이었다. 1920년에 리즈 대학에서 영어 언어학 조교로 강의하다가 1924년 리즈 대학에서 정교수가 된다. 1925년에는 톨킨은 다시 옥스퍼드 대학교로 가서 교수직을 맡게 된다. 톨킨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들이 모여 출판된 책이 《호빗》이었다. 호빗은 어른들에게까지 인기를 얻게 되고 호빗의 출판사는 톨킨에게 후속작을 요청한다. 이에 톨킨은 작가 토론모임인 잉클링스와 C.S.루이스의 조언을 받으며 《반지의 제왕》을 10여년에 걸쳐 저술한다. 톨킨의 절친한 친구이자 톨킨과 마찬가지로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C.S. 루이스는 톨킨과 함께 독서 모임인 잉클링스의 회원이었다. 둘은 잉클링스에서 문학, 역사, 종교, 신화 등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루이스는 톨킨이 생각하고 저술했던 가운데 땅 이야기를 경청하고 격려해 주었다. 톨킨과 루이스는 말년에는 소원해 지기도 하였지만 둘은 대체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 하였다. 톨킨은 1963년 루이스가 죽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다. 우리들을 맺어준 깊은 우정은 지금도 그대로이다"라고 하였다.

     

    죽음

    톨킨의 아내가 1971년 11월 29일 죽었을 때 톨킨은 아내의 묘지 비석에 루시엔(Lúthien)이라고 아내의 이름 아래에 새겼다. 21개월 뒤인 1973년9월 2일 톨킨 81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같은 곳에 뭍혔으며 비석에 베렌(Beren)이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베렌과 루시엔은 《실마릴리온》의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비석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베오울프:괴물과 비평가들》

    톨킨은 그의 소설과 함께 대학 문학 비평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1936년 강의내용이 나중에 기사로 출판되게 되고, 앵글로 색슨의 서사시 베오울프를 문학적으로 재해석한 그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논문은 고전 영문학 공부하는데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책과 단편

    톨킨은 그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판타지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매해 크리스마스 편지를 산타할아버지가 보내는 형식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썼고 그 편지에는 짧은 이야기 시리즈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나중에 모아져 《산타할아버지의 편지》로 출판된다. 한국에서는 《북극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다른 이야기로는 《미스터 블리스》와 《로버랜덤》,《니글의 나뭇잎톰 봄바딜의 모험》,《요정 이야기에 관하여》,《큰 우튼의 대장장이》,《햄의 농부 가일스》 등이 있다.

     

    호빗

    톨킨은 자신의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호빗》은 톨킨의 자녀들을 위해 쓴 소설이었다. 1936년 우연한 기회에 호빗을 읽게 된 런던의 조지 알렌 & 언윈(George Allen & Unwin) 출판사 여직원의 강력한 추천으로 《호빗》을 출판하였다. 출판 이후 《호빗》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들에게까지 인기를 끌게 되고 출판사는 톨킨에게 속편을 요청하게 된다.

     

    반지의 제왕

    톨킨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반지의 제왕》은 출판사의 요청에 의해 시작하였고 10여 년에 걸쳐 반지의 제왕을 쓰게 된다. 처음 출판은 1954년부터 1955년에 3권으로 출판되었다.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는 동안 그는 잉클링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특히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톨킨은 처음 《반지의 제왕》을 《호빗》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로 쓰려 했다. 그러나 소설의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지고 심각해지게 되면서 성인 독자들에게 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 《반지의 제왕》 집필전에 그가 구상하고 집필한 벨레리안드(Beleriand) 배경 이야기는 그의 사후에 《실마릴리온》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된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소설의 성공은 판타지 장르 소설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반지의 제왕은 1960년대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고 판매와 독자평 둘다에서 20세기에 가장 인기있는 소설 중에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2003년 BBC에서 개최한 "대단한 책"(Big Read) 조사에서 반지의 제왕은 "영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실마릴리온

    톨킨은 베렌루시엔의 이야기가 포함된 '신화의 초안'(Sketch of the Mythology)을 간략하게 썼다. 그 내용은 나중에 퀜타 실마릴리온에 포함되게 된다. 톨킨은 실마릴리온 이야기가 반지의 제왕과 함께 출판 되기를 바랬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하는 바람에 생전에 출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전쟁 직후이기 때문에 인쇄비가 너무 높았던 것도 그 이유였으며 반지의 제왕도 3부로 나누어 출판하게 된다.

    톨킨은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에게 그의 사후에 작품 발표에 대한 저작권을 위임하였고 크리스토퍼는 그의 아버지의 미출판 원고들을 정리, 편집하여 책 《실마릴리온》으로 1977년 출판하게 된다. 이는 톨킨이 죽은 후 4년 뒤의 출판이었다. 《실마릴리온》은 가운데 땅에서의 신화와 역사를 기록한 소설로서 작가가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기 전에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이라고 적힌 노트에 1937년부터 쓰기 시작해 죽기전까지 집필한 것으로서 《반지의 제왕》 앞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한국에서도 동명의 제목(실마릴리온)으로 출판되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가운데땅 역사서》

    1980년 크리스토퍼 톨킨은 톨킨의 유작 원고 자료들을 모아 《누메노르와 가운데땅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출간한다. 1983년부터 1996년까지 톨킨의 저서를 모아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 1부와 2부와 《벨레리안드의 노래》를 비롯한 12권의 책을 출간하고, 나중에 학문적으로 설명한 해설과 각주를 달아 이를 《가운데땅 역사서》라는 이름의 12권으로 재정리한다.

     

    후린의 아이들

    2007년 《후린의 아이들》이 하퍼 콜린스(Harper Collins)와 휴튼 미플린(Houghton Mifflin)에 의해 출판되었다. 《후린의 아이들》은 톨킨이 1918년에 집필을 시작했다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작품으로, 내용은 톨킨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실마릴리온》,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가운데땅 이야기》 등에서 원고를 모은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중간계이며 《반지의 제왕》의 시대 배경 제3시대보다 6500년 앞선 제1시대의 영웅 투린의 비극적인 투쟁과 사랑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한국에서도 2008년 7월 출간되었다.

     

    《지구르드와 구드룬의 전설》

    2009년 5월 휴튼 미플린 하코트(Houghton Mifflin Harcourt) 출판사와 하퍼 콜린스에서 톨킨의 미발행 작품을 지구르드와 구드룬의 전설(The Legend of Sigurd and Gudrú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크리스토퍼 톨킨이 편집하고 소개를 덧붙였다. 내용은 노르웨이의 전설에 관한 책으로 1930년대 톨킨이 옥스퍼드 대학에 교수로 있을 무렵에 썼던 서사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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