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피아노의 시인" 가장 위대한 피아노 작곡가 :: 예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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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팽, "피아노의 시인" 가장 위대한 피아노 작곡가
    인물 이야기 2018. 3. 4. 20:59

     

    쇼팽, "피아노의 시인" 가장 위대한 피아노 작곡가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 1810년 3월 1일~1849년 10월 17일)은 폴란드피아니스트·작곡가이다. “피아노의 시인” 이란 별칭을 가진 쇼팽은 가장 위대한 폴란드작곡가이자 가장 위대한 피아노곡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프레데리크 프랑수아는 그가 20세 때 폴란드를 떠나고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을 때 쓰던 프랑스어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프리데리크 프란치셰크 호핀이다.

     

    출생

    바르샤바 근교에서 프랑스인 아버지 니콜라 쇼팽과 폴란드인 어머니 유스티나 크자노프스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쇼팽 자신과 가족은 쇼팽이 1810년 3월 1일에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로마 가톨릭교회 세례 기록을 보면 2월 22일에 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것을 근거로 쇼팽을 연구하는 사람의 3분의 2는 그의 생일이 2월 22일이 맞다고 보고 있다. 쇼팽의 재능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그것이 모차르트에 비견될 정도였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8세 때에 공연을 가졌다. 그의 천재성이 바르샤바에 보도되면서 귀족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었고 자선공연도 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첫 피아노 레슨은 1816년에 바이올리니스트 보이치에흐 지브니에게 받게 되었는데, 1822년 스승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여 스스로 그만두었다.

    이후 쇼팽은 바르샤바 콘소바토리의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인 빌헬름 뷔르펠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4세 때 바르샤바 중학교에 입학하여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연극에도 흥미를 가지고 희곡을 써서 공연하기도 하였다. 1826년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하였으며, 1829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발표하고 빈에서 연주회를 열어 이름을 떨치자, 유럽 여러 나라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 그가 빈에 도착하였을 때 바르샤바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에게 조국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편지를 보냈으나, 아버지로부터 조국을 위해 음악을 열심히 하는 길도 애국이라는 답장을 받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폴란드가 낳은 최초의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다.

    1831년 파리에 도착하여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혁명이라는 격정적인 연습곡을 작곡하였다. 1832년 파리에서 최초의 연주회를 열어 성공함으로써, 그 후 파리 사교계의 유명한 인물이 되었으나 그는 늘 조국과 친구와 가족을 걱정하며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즉흥 연주에도 뛰어났으며, 침착한 성품으로 그의 전주곡이나 연습곡은 예술적 수준이 높은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파리에서의 생활

    1830년대 초중반의 파리는 작곡가를 위한 시기였다. 쇼팽이 유명한 작품들을 남긴 것이 이 때이다. 1838년경에 그는 파리 시민들에게 유명해졌다. 그의 친구로 프란츠 리스트, 빈첸초 벨리니, 외젠 들라크루아가 있었다. 쇼팽은 헥토르 베를리오즈와 로베르트 슈만과도 친했는데, 그들의 음악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작품을 헌정하기도 했다.

    1836년에 쇼팽은 17살의 폴란드 소녀인 마리아 보진스카와 비밀 약혼을 했고 나중에 취소했다. 같은 해에, 마리 다굴 백작 부인이 연 파티에서 쇼팽은 소설가이자 애인인 조르주 상드를 만났다.

    쇼팽과 상드의 연애관계는 183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그들의 애정 관계는 9년간 지속되었고, 쇼팽의 건강 악화와 상드의 자녀들 문제로 헤어졌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는 스페인 마요르카의 버려진 로마 가톨릭교회 수도원인 발데모사수도원 근처의 오두막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1838년 ~ 1839년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가 닥쳤다. 쇼팽은 파리에서 먼 길을 거쳐 피아노를 가져와서 언덕에 있는 수도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쇼팽은 그 절박한 시간의 기분을 스물 네 개의 전주곡(작품번호 28)에 담았다. 그 작품의 대부분은 마요르카에서 쓰여진 것이다. 추위는 쇼팽의 건강과 폐병에 큰 타격을 주었고, 그와 조르주 상드의 관계가 불륜으로 의심받아 비난과 푸대접을 받았다. 결국 파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쇼팽은 그 일 이후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1840년대에 쇼팽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그와 상드는 노앙을 포함한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1849년 쇼팽은 모든 작품을 완성하고 마주르카와 녹턴에만 전념했으며,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러시아의 폴란드 혁명진압으로 발생한 난민들을 위한 연주회에 참여하였다. 그의 마지막 곡은 마주르카 바 단조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폴란드를 생각하면서 지은 민족주의적인 곡이다.

    1849년 10월 17일 쇼팽은 사망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폐결핵이지만 그의 친지가 부검한 결과가 이전 검진결과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낭포성 섬유증이나 폐기종 같은 다른 질병을 앓지 않았느냐는 주장도 있다.

    로마 가톨릭 성 마들렌 교회에서 열리게 된 그의 장례식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모차르트의 레퀴엠 을 연주하기로 했다. 레퀴엠에는 여자 성악가의 역할이 크지만 마들렌 교회에서는 합창단에 여자 가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마찰 때문에 장례식이 2주 동안 연기되었고, 결국 교회 측에서 쇼팽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양보했다. 쇼팽의 시신은 파리 Père Lachaise에 안장되었고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의 십자가 교회에 있는 기념비에 묻혔다.

     

    작품

    쇼팽은 살롱음악인 녹턴을 깊고 세련된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일반적인 춤곡인 폴란드의 마주르카나 빈의 왈츠의 선율과 표현의 폭을 넓혔다. 또한 전주곡을 독립적인 장르로 만든 장본인이다.

    쇼팽의 곡은 독특한 선율로 많은 대중들에게 공감을 만들어낸다. 그중에는 《혁명 연습곡》과 《강아지 왈츠》가 있다. 《장송 행진곡,전주곡 제 4번》은 지금까지도 슬픔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곡으로 쓰이고 있다. 《환상 즉흥곡》 은 쇼팽 시절의 오페라 선율을 모방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반음계를 구사한 곡이다. 쇼팽은 노래하는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피아노를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종종 자신이 도니제티빈첸초 벨리니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쇼팽의 작품과 재능은 다른 작곡가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 슈만은 쇼팽의 선율을 따서 작곡한 그의 《사육제》를 쇼팽에게 헌정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그의 《Harmonies Poétiques et Religieuses》 가운데 한 악장인 〈Funérailles〉를 쇼팽에게 헌정했고 그 때가 의미심장하게도 1849년 10월이었다. 그 곡의 중간 부분은 쇼팽의 유명한 폴로네이즈 53번의 옥타브 트리오를 연상케 한다.

    전주곡과 연습곡을 포함한 많은 쇼팽의 곡들이 그만의 고유한 기교를 띠고 있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과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은 이 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서양 고전음악에서 쇼팽의 음악은 낭만주의 시대에 속한다. 하지만 쇼팽 자신은 낭만주의 조류에 관심이 없었거나 싫어했고 자기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쇼팽의 작품을 전형적인 낭만주의 음악으로 보고있다.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피아노로 작곡되었고 피아노와 다른 악기를 위한 몇몇 곡도 존재한다.

     

    작품 목록

     

    피아노 독주곡

    21개의 녹턴

    58개의 마주르카

    4개의 발라드

    1개의 뱃노래(barcarolle)

    1개의 자장가(berceuse)

    1개의 볼레로

    2개의 부레

    3개의 소나타

    4개의 스케르초

    3개의 에코세즈

    27개의 연습곡

    20개의 왈츠

    26개의 전주곡

    4개의 즉흥곡

    18개의 폴로네이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brilliante>와 환상 폴로네이즈를 제외한다면 16개)

    1개의 푸가

    1개의 환상곡

     

    피아노와 관현악

    2개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 피아노 협주곡 1번, 피아노 협주곡 2번

    4개의 다른 작품 - 《Là ci darem la mano》에 의한 변주곡, 《Krakowiak》, 《Grande Fantaisie on Polish Airs》, 《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brillante》(폴로네이즈로 분류된다면 제외)

     

    가곡

    17개의 피아노와 성악을 위한 폴란드 노래

     

    실내악

    1개의 피아노 트리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1개의 첼로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개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2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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