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고갱, 태평양의 타히티 섬 민중들의 순수한 삶과 개성에 감동하여 수많은 작품을 그려내다.

아쫑 2017. 7. 22. 03:18

 

고갱,  태평양타히티 섬 민중들의 순수한 삶과 개성에 감동하여 수많은 작품을 그려내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년 6월 7일 ~ 1903년 5월 8일)은 프랑스인상주의 화가이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림

고갱은 프랑스 파리에서 저널리스트였던 아버지 클로비스 고갱과 프로토 사회주의자 리더인 플로라 트리스탄이 어머니였던 알리나 마리아 차젤이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850년 고갱의 아버지 클로비스는 정치적 격정기를 피해 페루로 가던 도중 죽었는데 당시 고갱은 18개월이었다. 그 후 고갱은 7세 때에 프랑스에 돌아온다. 바다를 동경하여 선원이 되어 남미도 항해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그만두고 화가로서 새출발을 한다.

 

퐁 타벵

그러나 회화는 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돈은 다 떨어져서 아내의 고향인 덴마크로 가는데 덴마크에서 발표한 일도 실패, 고갱은 처자를 남겨두고 단 하나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파리에 나타났다. 그러나 생활은 궁핍하여 포스터를 붙이는 노동도 했다. 그리고 1886년부터 브르타뉴의 퐁 타뱅으로 가서 젊은 화가들과 만나, 인상파의 그림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창시, 평면적인 채색으로 장식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그의 화풍을 따르는 젊은 화가들과 '퐁 타벵(Pont-Aven) 파'를 창립하였다. 파리로 돌아가서는 고흐를 만났다.

 

순수함을 찾다

그러나 고갱에게는 순수함에 대한 정열이 있었다. 문명의 거짓을 좋아하지 않았다. 거짓이 없는 순수함 속에는 이 있다. 거기에는 시(詩)가 살아 있다. 고갱은 1887년 봄에 남미로 건너가고, 다시 마르티니크 섬으로 가지만 병으로 인한 고뇌로 귀국한다. 그리하여 이듬해 퐁 타뱅으로 다시 가 거기에서 젊은 화가들과 만나 새로운 회화의 이론을 주장한다. 이어 빈센트 반 고흐의 초대로 아를르에도 가지만 그 우정은 깨져 버려, 재차 순수함을 그리워한다. 그 염원을 달성한 것은 1891년으로, 고갱은 태평양타히티 섬 민중들의 순수한 삶과 개성에 감동하여 수많은 작품을 그려 낸다. 고갱은 한번 파리에 돌아오지만, 1895년에는 타히티에 돌아간다. 그러나 그림 제작하는 것 외에는 궁핍과 병과 싸우는 생활이고, 1901년에는 Hiva Oa 섬으로 옮겨 가서 고독한 생애를 마친다.

 

대표 작품

《황색 그리스도》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네버모어》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타히티의 여인들》

《언제 결혼할까?》

《눈 속의 브르타뉴 풍경》

《모자를 쓴 자화상》

《모성》

《과부습작》

《야회복을 입은 메트 고갱》

《캔버스 앞의 자화상》

《야생화와 만돌린이 있는 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