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예술과 과학의 창조에 대한 비밀을 밝힌 천재 :: 예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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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예술과 과학의 창조에 대한 비밀을 밝힌 천재
    미술 이야기 2017. 8. 12. 12:17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예술과 과학의 창조에 대한 비밀을 밝힌 천재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케치하였다.

     

    생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4월 15일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에서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인 피에르 다 빈치(Ser Piero da Vinci)와 가난한 농부의 딸인 카타리나(Catarina)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르네상스의 만능인으로 어릴 때부터 수학·음악·회화 외에 모든 학문에 있어서 다재다능함을 보였다.

    레오나르도는 1466년 열네 살 때, 가족과 함께 토스카나의 수도였던 피렌체로 이주해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갔다. 베로키오는 그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공방을 이끌던 실력 있는 예술가였다. 레오나르도는 그곳에서 20대 초반까지 미술 및 기술 공작 수업을 받았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에게 그림을 맡기고 자신은 조각에만 몰두할 정도로, 그를 제자가 아닌 화가로 인정했다.

    1472년 수업을 끝내고 피렌체 화가 조합에 등록하여 한 사람의 화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1476년 베로키오의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에 조력하고, 그 좌단에 천사를 그렸는데, 스승을 능가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레오나르도는 1481년까지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며, 1466-1482년을 그의 제1의 피렌체 시대라고 하는데, 당시의 작품으로 <석죽의 성모> <수태 고지> <베노바 가의 성모> 등이 있다. 이 시기에 그려진 인물화와 풍경화에서 이미 레오나르도의 독창적인 구도와 분위기 표현 기술을 엿볼 수 있다.

    1481년](또는 1482년)에 밀라노스포르차 귀족 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어 갔는데, 1482-1499년을 제1의 밀라노 시대라고 부른다. 밀라노에 간 목적은 스포르차 가의 선조인 프란체스코의 기마상 제작과 음악 교수 때문이었다. 약 12년 동안 화가로서뿐만이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기사로서 오늘날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암굴의 성모〉(1483년, 루브르 박물관)와 〈최후의 만찬〉(1495~1498년, 밀라노)이 제작되었다. 〈암굴의 성모〉에서는 레오나르도 특유의 화법인 이른바 환상적인 색감을 살리는 스푸마토(Sfumato)가 첫선을 보이게 되며, 뒤에 이 화법을 바탕으로 유명한 모나리자(1500~1503년, 루브르 박물관)가 그려졌다. 또한 당시 로마 가톨릭의 통제에 따라 제작되던 교회 미술계의 풍토를 깨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소신에 따른 작품 활동을 했다. 1489년 인체와 말의 해부학적 연구에 몰두하고, 인체의 해부와 조류의 비상에 관한 논문, 광학에 대한 연구에도 전심하였다.

    1500-1506년을 그의 제2의 피렌체 시대라고 하는데, 1499년 프랑스루이 12세의 밀라노 침입으로 1500년 피렌체로 돌아왔다. 여기서 제단화 <성 모자와 성 안나>를 그리고, 1502년에는 체잘레·보르지아에 토목 사업 운하 개발 도시 계획을 위해 초청되었다. 1503년에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는 그의 과학 연구가 한층 성하여 새가 나는 방법, 지질학과 물의 운동, 해부 등에 관한 수기를 남겼다.

    1506년 밀라노에서 프랑스 왕의 궁정 화가가 되었는데, 1506-1513년을 그의 제2의 밀라노 시대라고 부른다.

    1516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1516년 프랑소와 1세가 있는 프랑스의 끌로 뤼세(Clos Lucé)로, 그의 제자인 프란세스코 멜지(Francesco Melzi)와 함께 이주한다. 그는 3점의 그림모나리자라 조콘다),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을 가져간다. 여기서 <성 안나>와 <모나리자>를 완성하였다. 이 시대를 앙부아즈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여러 방면에 대한 오랜 연구를 정리하고 운하도 설계하였다.

    1519년 4월 23일 유언을 남기고 5월 2일 사망했다. 그의 나이 67세였고, 조르조 바사리는 레오나르도의 전기에서 레오나르도가 프랑수아 1세의 품 안에서 숨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 자식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프란세스코 멜지(Francesco Melzi)가 그의 유산을 상속하였다.

    1570년 프랑세스코 멜지의 죽음으로 그가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엄청난 양의 크로키와 그림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 밖의 업적

    다 빈치는 파동 운동 이론, 연통관 내의 압력, 유체에 미치는 압력의 발견자이기도 하다. 그 응용면에 있어서 양수기수압의 발견자였다. 새의 나는 방법에 대한 연구로 비행기의 원리를 생각하고 공기의 연구에서 바람의 발생과 구름과 비의 발생도 이론적으로 추구했다. 또 공기 역학, 조류의 비행 등의 연구 노트에는 낙하산, 헬리콥터, 플레이트 날개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해부학에 있어서도 인체의 각 부분의 작용을 역학적 원리로서 분명히 하였다. 그 밖에도 식물학 등에 관해서도 연구를 하였다. 그는 예술과 과학의 창조에 대한 비밀을 밝힌 천재였다. 저서로 그림에 관한 르네상스 예술 이론의 중요한 문헌인 <회화론>을 비롯하여 많은 논문이 있다.

     

    대표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1472년~1475년)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베로키오 공방 시절: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왼쪽의 천사를, [베로키오]는 오른쪽의 천사를 그린 것으로 알려짐. 교회의 통제를 거부하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그렸다.)

    〈수태고지〉(1475년~1480년)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예수를 잉태한 성모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왔다는 루가 복음서의 탄생 설화를 소재로 함

    〈동굴의 성모〉(1483년~1486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예수헤로데를 피해 이집트로 갔다는 루가 복음서의 전승 내용을 소재로 함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1488년~1490년) 차르토리스키 박물관, 크라코우 (Krakow), 폴란드 모델은 세실리아 가레라니(Cecilia Gallerani)로 뤼도빅 르 모르(Ludociv le More)의 정부(情婦)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의 흰 족제비는 다양한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순결함 혹은 순수함 그리고 모로 집안에 대한 상징으로 주로 해석된다.

    〈음악가의 초상〉(1490년경) 암브로시니아 미술관, 밀라노, 43 x 31 cmㅡ 다 빈치의 유일한, 남성을 그린 초상화로 알려졌다. 모델은 프란치노 가퓌리오(Franchino Gaffurio)

    〈리타의 성모〉(1490년~1491년) – 에르미타지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최후의 만찬〉(1498년경)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수도원 식당, 밀라노

    모나리자〉(1503년~1506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암굴의 성모〉(1508년경) 국립 미술관, 런던

    〈성 안나와 성 모자〉 (1510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로이트가 다 빈치의 동성애를 증명할 수 있는 단서로 본 그림. 성 안나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즉, 예수의 외할머니이다.

    〈세례자 요한〉(1514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다 빈치의 손으로 완성된 마지막 작품으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모호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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