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사회적 상황에 대해 예리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과 강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 예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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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 사회적 상황에 대해 예리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과 강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인물 이야기 2017. 8. 20. 22:21

     

     

    황석영, 사회적 상황에 대해 예리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과 강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황석영(黃晳暎, 1943년 1월 4일 ~ )은 대한민국소설가이다. 1962년,《입석부근(立石附近)》으로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에 입선하며 등단하였고 1970년,《탑(塔)》이 조선일보에 당선되며 문단에서 활동하였다.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 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그는 민중 역사소설로 불리는 《장길산》을 통해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에 주목했으며, 《한씨연대기》와 《삼포 가는 길》등을 통해 산업화 시대의 시대정신과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대변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길산》,《삼포 가는 길》,《손님》,《오래된 정원》,《심청》등이 있다.

     

    생애 초반

    1943년 1월 4일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1945년 광복 후에 평양 외가로 왔다. 본명은 황수영이다. 1947년 월남하여 영등포에 정착, 1950년 영등포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피난지를 전전했다. 1956년 경복중학교, 1959년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 중 청소년 잡지인 《학원(學園)》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 《팔자령》이 당선되었다.

     

    문단 초기 활동

    1960년 경복고등학교 재학 중, 4·19 혁명 때 함께 했던 안종길이 경찰의 총탄에 사망하여, 그는 친구들과 함께 안종길의 유고 시집을 발간했다. 1961년 전국고교문예 현상공모에 《출옥일》이 당선되었고, 1962년 봄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남도 지방을 방랑하다 같은 해 10월 집으로 돌아왔고 11월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석부근》이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검정고시를 거쳐 1964년 숭실대학교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제2한강교 건설노동자와 남도로 내려갔다. 이 시기에 일용 노동 등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칠북의 장춘사(長春寺)에서 입산했다. 동래 범어사를 거쳐 금강원에서 행자 노릇을 하다가 어머니가 찾아와 집으로 돌아갔다. 1966년 대학에서 제적된 뒤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청룡부대 제2진으로 베트남 전쟁 참전했다. 훗날 그가 쓴 장편소설인 《무기의 그늘》에는 당시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참전 이후 1969년 5월 군에서 제대했다.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환영의 돛》과, 베트남전의 경험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탑》이 당선됐다. 이때부터 황수영 대신 황석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여성적인 이름과 '황수영 시절의 사연들이 싫어' 바꾸었다고 한다.

    1970년부터 《돌아온 사람》, 《객지》, 《삼포가는 길》 등의 현실주의 중·단편을 속속 발표했다. 이때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중퇴하였으나, 2000년 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1974년 7월부터는 한국일보에 대하소설 《장길산》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연재는 1984년 7월까지 계속됐다.

     

    1980년대 이후

    1989년 3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청으로 방북하여 방북 기간 동안 평양에서 김일성과 만났다.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예술원 초청작가로서 1991년 11월까지 독일베를린에 체류했다. 이때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신동아》와 《창작과 비평》에 게재했다.

    한편 그는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대상 중 한사람이 되어 노태우 정부로부터 감시당했는데, 1990년 10월 4일 오후6시40분쯤 외국어대 재학 중 민학투련 출신이었던, 탈영병 윤석양 이병의 폭로에 의해 밝혀졌다. 윤석양은 탈영후 서울시 연지동 기독교회관 7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양심선언」을 통해 탈영당시 보안사에서 갖고나온 동향파악대상자 개인색인표 신상철, 이들 내용이 입력된 컴퓨터디스킷을 공개했다.

    1993년 4월에 귀국했을 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3월에 김대중한테 특별 사면되면서 그의 소설 《장길산》, 《객지》, 《오래된 정원》, 《무기의 그늘》, 《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 《손님》 등이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중화민국 등에 출간되었고 영국, 독일, 스페인에서도 곧 출간되었다.

     

    2000년대 이후

    2009년 5월 13일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 순방에 참가했다. 그는 자신이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 정부"로 평가한다고 말했으며,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그는 용산 참사와 관련, "현 정부의 실책이라고 본다."고 말했지만, "해외에 나가 살면서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다."며 "70년대 영국 대처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다."고 지적한 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행보에 대해 보수 논객인 박효종 서울대학교 교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념이나 가치관의 변화를 겪을 수 있다. 황석영 씨의 발언을 놓고 변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반면에 진보 성향의 손호철 서강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MB 정부를 중도라고 규정하는 건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황석영은 2009년 6월 7일, 한겨레 신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 지지를 한달도 안돼 철회했다. 이에 대해 황석영은 "이명박 정부의 내용이라는 게 내가 살아왔던 것과 다르지만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방북, 망명을 거쳐 1998년 감옥을 나온 뒤 《바리데기》,《개밥바라기 별》,《강남몽》,《낯익은 세상》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이 자신의 후반기 문학이라 말하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 변모ㆍ변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2년 '등단 50주년'을 맞이하는 소감에 대해서는 "현재에서 가까운 기억들은 지워버리고 자기가 남겨야 할 기억을 간추리고 재정리하듯 만년문학은 근원과 출발로 돌아가 여러 관계를 정리하고 큰 선에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등단 50주년을 맞아 낸 소설《여울물 소리》출간 인터뷰에서 황석영은 올해 칠순이나 앞으로 10년은 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발언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헌을 통한 권력 분산, 경제민주화, 북방정책 등 세가지 목표를 이루고 싶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에 기대했던 '북방정책'을 숙원사업으로 꼽았다. 몽골부터 카자흐스탄까지 북방 국가들과의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이룸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닦는다는 게 그가 주장하는 '북방정책'의 골자다. 이를 위해 2009년 이명박과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다가 많은 비판에 시달렸던 그는 그간 장편을 발표하면서 정치와 거리를 두며 원로작가로 돌아가는 듯했으나 2012년 대선을 계기로 야권후보를 지지하며 야권 대선 후보인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평가

    그의 소설은 1970년대 초반 이후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예리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과 강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유신정권개발 우선 정책과 산업화·근대화의 파행적 전개 등이 황석영의 투철한 시대의식과 맞부딪침으로써 그의 소설을 더욱 문제적인 작품으로 이끌고 간 것이다. 특히, 《객지》, 《삼포가는 길》은 도시화와 산업화 우선의 개발정책이 야기한 이농현상과 농촌의 붕괴현상 등 당시 사회적 모순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작품이다.

    그가 1980년대에 발표한 장편소설 《장길산》은 지배층 중심의 사관이 두드러지는 기존의 역사소설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 넘어서 홍명희의 《임꺽정》 이후에 단절된 민중적 영웅상을 소설 속에서 다시 부활시킨 작품이다. 민중의 한을 역사변혁의 힘으로 승화시킨 그의 소설은 근본적으로는 '역사의식'의 바로세우기에서부터 출발하며 남성적인 투박한 '힘'이 두드러지는 강한 문체로서 소설 전체의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전개시키고 있다. 《객지》, 《삼포가는 길》의 결말 부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그의 소설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와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의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마치 풀뿌리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고통과 시련을 견디고 미래를 향한 강한 투쟁 의욕과 생명력을 발산하는 '인물'의 부각은 그의 소설의 뛰어난 매력이자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다. 현실참여파로 정치사상적으로 사회민주(사민주의)적 진보주의자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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