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 <보디가드>, "벨벳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극적인 감정을 표현" :: 예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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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트니 휴스턴, <보디가드>, "벨벳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극적인 감정을 표현"
    음악 이야기 2017. 7. 27. 13:40

     

     

    휘트니 휴스턴, <보디가드>, "벨벳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극적인 감정을 표현"

     

    휘트니 엘리자베스 휴스턴(영어: Whitney Elizabeth Houston, 1963년 8월 9일 ~ 2012년 2월 11일 )은 미국의 알앤비/팝 가수이고, 배우, 전직 패션 모델이다. 휘트니는 2010년까지 총 415번의 수상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을 받은 여성 아티스트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랐다.(수상 리스트: 에미 상 2회, 그래미 상 6회, 빌보드 뮤직 어워드 16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22회 등). 또한 휴스턴은 세계의 베스트 셀러 음악가로 세계적으로 1억7천 만 장의 싱글과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휘트니는 어머니인 씨씨 휴스턴을 비롯해 사촌인 디온 워윅, 그리고 대모인 아레사 프랭클린 등의 유명한 소울 가수들을 어려서부터 봐 오면서 자랐고, 11살의 나이에 뉴저지 교회의 청소년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클럽에서 어머니 씨씨 휴스턴을 도와 노래를 부르고 있던 와중에 아리스타 레코드사의 수장인 클라이브 데이비스에게 발탁되어 전문 가수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휘트니는 지금까지 총 여섯 장의 정규 음반과 세 장의 사운드트랙 음반을 발매했는데, 이 음반 모두 다이아몬드, 멀티 플래티넘, 플래티넘, 골드 인증을 받았다.

    휴스턴은 1985년 첫 데뷔 음반 Whitney Houston을 발매했고, 이는 솔로 여가수 데뷔 음반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록되었다. 휘트니의 두 번째 정규 음반 Whitney(1987)는 빌보드 200 차트 1위 데뷔를 했는데, 이는 여자 가수로서는 최초로 1위 데뷔를 한 음반이었다. 휘트니의 크로스오버화된 음반들은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MTV에서도 눈에 띄게 인기를 얻었으며, 'How Will I Know'를 통해 많은 상을 거머쥔다. 휘트니의 성공에 따라 이후 많은 흑인 여자 가수들이 등장한다.

    휘트니는 1992년 영화 《보디가드》를 통해 배우로도 활동했다.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1994년 열린 그래미 상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받는다. 앨범의 리드 싱글이였던 "I Will Always Love You"는 여자 가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로 남았다.[4]

     

    목소리와 가창 스타일

    휴스턴은 메조-소프라노였고 그녀의 비범한 보컬 재능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The Voice"로 불렸다. 뉴욕 타임스의 존 파렐스는 그녀의 보컬에 대해 "그녀는 언제나 정말로 큰 목소리, 벨벳처럼 부드러운 저음으로부터 격정적인 중음과 울려퍼지면서 높이 치솟는 고음까지 기술적으로 경이로운 목소리를 지녔다"고 평했다. 2008년 <롤링 스톤>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명의 가수' 순위를 발표하면서 휴스턴을 34위에 올리며, "그녀의 목소리는 거대하고 빛나는 외침이다. 노래를 45초간 무반주로 부르며 시작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는 거의 없다. 휴스턴이 그렇게 부른 'I Will Always Love You'는 역작이다"라고 언급했다. <롤링 스톤>지의 다른 음악 평론가 매튜 퍼피추아는 휴스턴의 보컬을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휘트니 휴스턴은 놀랄 만한 음역과 비범한 기술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를 위대한 가수로 만든 것은 노래에 그것의 드라마와 감정을 믿을 수 없이 정확하게 연결하는 능력이다." 그는 또 "그녀는 재능이 뛰어난 공연가라 그녀의 라이브 공연들은 종종 그녀가 발표한 스튜디오 음반들의 빛을 잃게 만들었다"라고 언급했다.

    <뉴욕 타임스>의 존 카라마니카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흠이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강하며, 사랑과 열망의 노래에 잘 어울렸다. 그 목소리로 그녀는 대성공과 업적을 이뤄냈고, 시간이 멈춘 듯한 수많은 명공연들을 만들어 냈다. 머라이어 캐리는 미국의 흑인음악 잡지 <바이브>의 1998년 11월호 인터뷰 기사에서 "휘트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정말로 풍부하고 강한 중음역대를 지니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로 훌륭하고 강하다"라고 휘트니의 목소리를 평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앤 파워스는 "[휴스턴의 목소리는] 20세기 팝의 풍경을 보여주는 기념비처럼 서 있다. 그것은 시대의 건축물을 정의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꿈의 방패막이가 되며, 셀 수 없는 많은 모방자들이 경력을 쌓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고, "그녀의 전성기 시절, 어떤 것도 그녀의 거대하고 깨끗하며 멋진 메조소프라노에 필적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BBC 뉴스 매거진>의 로렌 에버리트는 휴스턴의 음반에서 사용된 멜리스마와 그것의 영향력에 대해 기술했다. "휘트니 휴스턴이 'I Will Always Love You'의 도입부 가사 'I'를 노래하는 데는 거의 6초가 걸린다. 이 6초 동안 이 가수는 한 음절 안에 일련의 다른 음들을 가득 채워넣는다. 그 기교는 노래 전체에서 반복되는데, 모든 'I'와 'you'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한 보컬 기교를 멜리스마라고 부르고 다수의 모방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다. 휴스턴 이전에도 다른 아티스트들이 그것을 사용했을 지는 모르나 그러한 보컬 기교를 90년대 주류 음악계에 밀어 넣은 건 바로 그녀가 부른 'I Will Always Love You'였다. [...] 그러나 휴스턴이 최고로 이뤄낸 것은 아마도 절제일 것이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너무 큰 소리로 과하게 노래하는 것이 점점 심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필요한 바로 그 순간을 위해 멜리스마를 간직해 놓는 휴스턴의 능력의 진가를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뉴욕 타임스>의 스티븐 홀덴은 1993년 7월 20일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휴스턴의 콘서트 리뷰에서 그녀의 가수로서의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으며 칭찬했다. "휘트니 휴스턴은 '목소리 하나면 충분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당대의 몇 안 되는 팝스타들 중 하나이다. 수 백만장의 앨범을 파는 거의 모든 공연자들이 개그부터 화려한 서커스에 맞춰 춤추기까지 연예인의 온갖 수단들을 다 요청하는 동안, 휴스턴은 단지 거기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만 한다." 그녀의 가창 스타일에 관해서는 "그녀의 가창 방식의 트레이드마크―노래의 중반에서 퍼져나가며 떨리는 멜리스마, 가사 끝에서 숨막힐 듯한 흥분을 주는 빙빙 돌리는 꾸밈음 기교―는 그녀의 노래 해석에 음악적이면서 감정적인 번개의 번쩍임과 같은 것을 불어넣는다"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엘리사 가드너는 "그녀는 첫 번째의, 맨 앞에 위치한 팝 디바이다. 그것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로 말이다. 어떤 여성 팝 스타들도―머라이어 캐리도, 셀린 디온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아름다우면서 정교한 보컬의 유연함, 깨끗한 음색 그리고 가사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 멜로드라마를 스며들게 하는 능력에 있어서 휴스턴에게 대적할만한 경쟁자가 되지 못한다"고 휴스턴의 보컬 능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가드너는 휴스턴이 사망한 후 <USA 투데이>에 기고한 글에서도 "휴스턴은 가스펠로 단련된 명민함과 직관적인 리듬감을 전문가적인 팝 발라드 가수의 재주―벨벳처럼 부드럽고, 능란능란하게 극적인 감정을 표현―와 결합시킨 첫 번째 슈퍼스타였다"라고 언급했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2010년 한국의 음악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가장 노래를 잘 하는 팝 가수'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또한 '기교, 성량 등 기술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가수'로도 뽑혔다. 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던 흑인 음악 전문 웹진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휴스턴에 대해 "풍부한 성량과 넓은 음역을 갖춘 그녀는 가창력 하나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평했다. 음악평론가 성원호는 2012년 <이즘>에 기고한 글에서 휴스턴은 "데뷔와 동시에 팝계의 판도를 변화시킨 혁신적 디바"였고, 그녀의 보컬은 카리스마, 중후함, 폭발력, 대중성을 모두 갖춘 "흑인 여성 가수의 완성판"이라고 평했다.

     

    사망

    2012년 2월 9일, 휴스턴은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함께, 비벌리힐스의 비벌리 힐튼 호텔에서 그래미 전야 파티 공연 리허설 중이었던 브랜디모니카를 방문했다. 같은 날 그녀는 '켈리 프라이스와 친구들' 파티 무대에서 프라이스와 함께 "Jesus Loves Me"를 노래했고, 그것이 그녀가 대중들 앞에서 한 마지막 공연이었다.

    이틀 후인 2월 11일, 휘트니 휴스턴은 비벌리 힐튼 호텔 스위트룸에서 욕조에 잠겨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되었고 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망 원인은 즉시 알려지지 않았다. 후에 검시관은 "익사 사고"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비벌리힐스 소방서의 긴급 의료원들이 오후 3시 30분쯤에 도착했고, 휴스턴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휴스턴은 태평양 표준시로 오후 3시 55분에 사망한 것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지역 경찰은 "범행으로 보이는 명확한 징후들은 없었다"고 말했다. 3월 22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관실은 휴스턴의 사망 원인이 익사 및 "죽상경화 관상 동맥성 심장 질환과 코카인 복용의 결과"라고 발표했다. 검시관실은 그녀가 사망 직전 약물을 복용했음을 나타내는 일정량의 코카인이 휴스턴의 사체에서 발견되었다고 언급했다. 독극물 검사 결과로 그녀의 몸 속에서 발견된 추가 약물들―베나드릴(알러지 질환 완화제), 자낙스(신경안정제), 마리화나 그리고 플렉세릴(근육 이완제)―이 사망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 사망 방식은 "사고"로 분류되었다.

    휴스턴의 영결식은 2012년 2월 18일 토요일, 뉴저지 주 뉴워크의 뉴 호프 침례교회에서 초대자들만 입장가능한 형식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두 시간으로 예정되었으나 네 시간 동안 이어졌다. 스티비 원더("Ribbon in the Sky"의 개사 버전과 "Love's in Need of Love Today"를 공연), 씨시 와이난스("Don't Cry"와 "Jesus Loves Me" 공연), 앨리샤 키스("Send Me an Angel" 공연), 킴 버렐("A Change Is Gonna Come"를 개사해서 공연), 알 켈리("I Look to You"공연) 등이 추도식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공연들 사이사이에 교회 합창단의 찬송가와 명사들의 추모사가 배치되었다. 클라이브 데이비스, 케빈 코스트너, 휴스턴의 오랜 음악 감독이었던 리키 마이너, 디온 워릭, 그리고 과거 11년간 그녀의 보안요원이었던 레이 왓슨 등이 각각 추모사를 낭독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영결식에서 공연자로 내정되었으나 "불행히 다리 근육의 경련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밝히며 참석하지 않았다. 휴스턴의 전 남편 바비 브라운 또한 영결식에 초대 받았으나 식이 거행되기 전에 떠났다. 영결식 다음 날, 휴스턴은 뉴저지 주 웨스트필드의 페어뷰 공동묘지에 묻혔고, 그녀가 묻힌 곳은 2003년 사망한 그녀의 아버지 존 러셀 휴스턴의 무덤 옆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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