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호러소설 전문, 3억5천만 부의 판매 부수 기록 :: 예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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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븐 킹, 호러소설 전문, 3억5천만 부의 판매 부수 기록
    인물 이야기 2017. 5. 29. 17:03

     

     

     

    스티븐 킹, 호러소설 전문, 3억5천만 부의 판매 부수 기록

     

    스티븐 에드윈 킹
    (영어: Stephen Edwin King, 1947년 9월 21일 ~ )은 미국의 작가, 극작가, 음악가, 칼럼니스트, 배우, 영화제작자, 감독이다. 호러 소설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3억 5천만 부가 넘는 판매부수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호러소설 전문이며 그 역사에 정통하지만 SF, 판타지, 단편소설, 논픽션, 연극대본등도 많이 썼다. 많은 소설이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만화등 다른 미디어에 채용되었다. 리처드 버크먼(Richard Bachman)이라는 필명으로도 많은 책을 썼으며, 존 스위든(John Swithen)이라는 이름도 한 번 사용했다.

     

    어린 시절

    도널드 에드윈(Donald Edwin) 과 넬리 루스 필즈베리 킹(Nellie Ruth Pillsburh King)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배를 사러간다며 집을 나갔고, 어머니 혼자 킹을 양육하였다. 그리고 데이비드 (David King)를 입양하여 킹의 형으로 삼았다. 가족은 때때로 경제적 곤궁에 시달렸다. 그들은 위스콘신 주의 웨스트 디피어(West De Pere), 인디애나 주웨인, 코네티컷 주스트랫퍼드 등으로 옮겨다녀야했다. 11살 나던 해, 메인 주더럼으로 돌아왔고, 어머니는 부모님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돌봐드렸다. 그 후 어머니는 정신지체인을 돌보는 지역시설에서 일했다.

     

    교육과 첫 시도

    더럼 초등학교(Durham Elementary School)를 다녔다. 일찍부터 EC 호러 만화의 열렬한 독자였고, 재미삼아 글을 써서, 데이브스래그(Dave's Rag) 지에 투고를 하였다. 이것은 그의 형이 등사기로 찍어낸 것이었다. 나중에는 그가 영화등에서 본 스토리에 기초해서 쓴 소설을 주변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발각되어, 번 돈을 되돌려주어야 했다. 독립적으로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소설은 《나는 10대 무덤도굴꾼이었다》(I Was A Teenage Grave Robber, Comics Review, 1965년).

     

    《캐리》의 성공

    1973년 어머니날에 더블데이(Doubleday)출판사가 소설 《캐리》(Carrie)를 사들였다. 사실 그 작품은 당초 구상했던 아이디어를 전개시키다가 왠지 실망한 킹이 쓰레기통에 버린 원고를 아내(Tabitha)가 되살려 끝내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선불로 2500불을 받았으며(당시의 기준으로 하나의 소설에 대한 금액으로는 많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페이퍼백 출판권으로 40만불을 벌었다 (그 중 반은 출판사에 지불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안좋아져서 그와 가족은 메인 주 남부로 이사를 갔다. 이 시기에 《재래》(Second Coming)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후에 《예루살렘의 롯》(Jerusalem's Lot)이라고 바꿨다가 다시한번 《살렘스 롯》(‘Salem’s Lot)으로 바꿔서 1975년 출간하였다. 1974년 캐리의 출간 직후,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기전까지 이모인 엠리네가 소설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킹은 음주습관이 심각해져서, 심지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을 때조차 취해있었다고 한다.어머니를 잃었고 알콜의존증이라는 문제를 안고있었지만 그에게는 흥미진진한 시기였다. 어머니의 사후 킹과 가족은 콜로라도의 보울더로 이사하였고, 《샤이닝》(The Shining, 1977년)을 썼다. 가족이 메인 주 서부로 돌아온 것은 1975년이었다. 그곳에서 네 번째 소설인 《스탠드》(The Stand, 1978년)를 썼다. 1977년, 가족과 함께 짧게 영국에 다녀온 뒤 메인 대학에서 창작론 강의를 시작했다. 이래로 그의 주거지는 계속 메인이다.

     

    리처드 버크먼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약간의 단편소설 (Rage 1977년, The Long Walk 1979년, Road Work 1981년, The Running Man 1982년, Thinner 1984년)을 리처드 버크먼이라는 가명으로 출간하였다. 새로운 조건 속에서도 성공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 따져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자신이 누리는 인기는 순전히 운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없애고 싶은 실험이었다. 버크먼의 소설들은 작가의 진정한 정체에 대한 팁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떤 독자에 의해 저자의 본명이 킹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6년 《데스퍼레이션》(Desperation)을 발표할 때 자매판인 《레귤레이터》(The Regulators)는 저자명에 바흐만의 이름을 붙였다.

    2006년 영국에서 기자회견에서, 《블레이즈》(Blaze)라는 제목의 버크먼 소설 원고를 하나 더 발견했다고 밝혔다(2007년, 6월 12일, 미국과 영국 출판). 이 원고는 수년동안 킹의 모교인 메인대학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킹은 1973년에 1차로 완성했던 원고를 완전히 다시 썼다.

     

    중독

    1987년 《토미노커》(The Tommyknockers)를 출판한 직후의 일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심각해진 중독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증거품들을 찾아서 그의 앞에 늘어놓았는데, 맥주병, 담배갑, 코카인, 발륨, 마리화나, 알프라졸람, NyQuil, 기침감기약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솔직한 태도로 도움을 구했고, 이후로는 모든 형태의 약물과 알콜류를 끊고,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며 살게 되었다.

     

    교통사고

    1999년 여름 무렵,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A Memoir of the Craft)의 회고부분을 끝낸 채 진척시키지 못하고 8개월을 방치해두고 있던 중이었다. 6월 19일 오후 4시 30분 경, 메인 주 센터러벨(Center Lovell) 5번 도로(Route 5)의 갓길을 걷고 있는데, 브라이언 스미스(Bryan Smith)가 운전하는 미니벤이 뒷좌석의 강아지 때문에 길을 이탈했고 이어서 킹을 치었다. 그는 도로에서 14피트나 떨어진 곳에 처박혔다. 옥스퍼드 군의 부보안관 맷 배이커(Matt Baker)에 따르면, 킹은 뒤에서 받혔으며 목격자가 진술한 바에 따르면 운전자는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킹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그 자신이 사고를 낸 차와 서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뒤가 아니라 앞에서 받혔다)고 밝히고 있다. 사고 당시 킹은 부보안관에게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알려줄 정도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브리지턴(Bridgton)의 노던컴벌랜드 병원(Northern Cumberland Hospital)으로 실려갔다가, 헬기로 루이스턴의 중앙메인병원(Central Maine Hospital)으로 옮겨졌다. 오른쪽 가 주저앉고, 오른다리가 복합골절되었으며, 두피가 찢어지고, 엉덩이가 부러졌다고 진단을 받은 그는 7월 9일 이후로 거의 3주간을 입원해야 했다. 사실은 그해 초에 소설 한 편(《뷰익 8로부터》, From a Buick 8)을 거의 끝내놓은 상태였는데, 그 등장인물 중 하나가 차에 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스토리가 있었다. 그 유사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신경 쓰고 싶지는 않다." 고 말했다.

    10일간 5번의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은 후, 7월에 다시 집필 작업(《유혹하는 글쓰기》)에 복귀하였지만, 엉덩이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는 못했다. 사고를 낸 차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킹은 전속 변호사를 통해서 1500불에 스미스의 밴을 사들임으로써 밴이 이베이에 나오는 것을 막았고, 차에 대한 감정을 풀고 싶었던지 야구방망이로 실컷 때려부순 다음에야 폐차처리를 시켰다고 한다. 훗날 한 인터뷰에서는 (야구방망이가 아니라) 해머를 써서 완전히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밝혔다. 차 사고에 대한 소설적 설명이 《검은 탑》(Dark Tower) 시리즈의 마지막 소설에 등장하는데, 주인공(롤랜드 데스체인, Roland Deschain)이 킹을 치려는 밴을 저지하며, 응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스미스와 킹이 나눈 대화의 일부가 소재로 사용되었다.

    2년 후 그 사고가 폐에 남긴 후유증으로 심한 폐렴을 앓는다. 이 기간 중에 부인 타비사 킹은 남편의 스튜디오를 재배치하려는 의욕을 얻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공사 도중에 방문한 킹은 만일 자신이 실제로 죽는다면 자신의 작업실이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다가 소설 《리지의 이야기》(Lisey's Story)의 영감을 얻었다. 2002년, 절필을 선언하였다. 앉아있는 것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체력을 현저히 떨어뜨린 사고의 후유증이 결정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얼마 안가 그는 집필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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