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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 영국의 소설가인물 이야기 2017. 5. 30. 05:19
샬럿 브론테, 영국의 소설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 1816년 4월 21일 ~ 1855년 3월 31일)는 영국의 소설가이다. 영국의 북부 요크셔의 손턴에서 출생한 브론테 자매의 첫째이다.
생애
부친 패트릭 브론테 신부(Rev. Patrick Brontë)는 아일랜드 출신의 성공회신부였다. 그녀는 6명의 자녀 가운데 셋째였으며 모친은 그녀가 5세 때 사별하였다. 큰 네 아이는 부근의 기숙학교(寄宿學校)에 들어갔으나 엄격한 훈육과 볼품없는 식사로 그 중 둘은 폐병이 들어 죽었다. 이 곳의 생활이 후의 《제인 에어》에서 로드 학교의 생활로서 재현된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샬롯은 동생들과 어울려서 공상 이야기를 지어서 즐거워하기도 했으나 1831년부터 또 학교로 보내어졌으며 가정교사를 하면서 자활하게 된다. 1842년에는 여동생 에밀리와 함께 벨기에의 브뤼셀에 유학하였다. 이 학교의 교사 에제를 사랑했지만 아내가 있는 기혼자였기에 비련(悲戀)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경험은 그녀의 소설로 되살아난다.
다시 영국에 돌아와 1846년에 동생 에밀리와 앤과 함께 시집을 출판하였으나 2부 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2달만에 다시 동생들과 《폭풍의 언덕》,《아그네스 그레이》와 함께 《교수》를 썼으나《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만 채택되고 《교수》는 채택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1847년에 소설 《제인 에어》를 발표하여 크게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 기세를 받아 《셜리》를 쓰던 샬럿은 에밀리와 앤이 결핵으로 죽고 장례식을 치른 후에 자신의 동생 에밀리를 그린 《셜리》(1849)를 출간했다. 후에 출판된 그녀의 《빌레트》(1853)등과 함께 연애에 있어서 정열의 묘사에 새로운 시기를 긋게 되었다.
《빌레트》를 쓴 1년 후 샬럿은 아서 벨 니콜스와 결혼을 하였으나 1년도 안돼 샬럿은 임신 뒤 폐렴으로 사망했다. 사후 2년인 1857년 《교수》가 다시 발표되었다.
작품
제인 에어 (Jane Eyre, 1847년)
셜리 (Shirley, 1849년)
빌레트 (Villette, 1853년)
교수 (The Professor, 1857년)
브론테 자매
에밀리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1818년 7월 30일 ~ 1848년 12월 19일)는 언니의 소설 《제인 에어》가 큰 반향을 일으키자 엘리스 벨(Ellis Bell)이란 필명으로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폭풍의 언덕》(1847년)을 썼다. 에밀리는 시인으로도 인정받고 있는데 《폭풍의 언덕》은 그의 유일한 소설 작품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평단으로부터 비윤리적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그녀 역시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앤 브론테(1820년 1월 17일 ~ 1849년 5월 28일)은 액턴 벨(Acton Bell)이란 필명으로 언니들과 함께 작업한 《커러, 엘리스, 엑턴의 시집》(1846년)을 출간하였으며 대표작으로는 《애그니스 그레이》(1847년),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1848년)이 있다.☞ 연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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