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초기 경력, 주목받게 된 영화 :: 예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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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초기 경력, 주목받게 된 영화
    인물 이야기 2017. 5. 31. 21:09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초기 경력, 주목받게 된 영화

    초기 경력

    디카프리오는 여러 광고와 교육 영화에 출연하며 경력을 시작하였다. 5세 무렵에는 어린이 프로그램 《롬퍼 룸》 촬영장에서 시끄럽게 굴어 결국 출연하지 못했다. 의붓형인 애덤 패러의 광고 촬영장에서 모델로 발탁되었으며, 14살에는 매치박스의 자동차 광고에 출연했다. 1990년, 영화 《우리 아빠 야호》를 원작으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 《페어런트 후드》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1989년 《뉴 래시》와 1991년 《로잔느 아줌마》에서는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1990년에는 《산타 바바라》에서 어린 메이슨 캡웰 역할을 맡아 고정 출연했다. 《산타 바바라》와 《페어런트 후드》로 제12회 젊은 예술가상(영 아티스트 어워즈)  최우수 아역연기상에 후보 지명 되었다.

     

    1991-1995년: 주목 받게 된 영화

    1991년 영화 《크리터스 3》에서 조쉬 역할로 스크린 데뷔를 하였으며, ABC 시트콤 《그로잉 페인스》에 고정적으로 출연하였다. 1993년 그는 400여명의 아역 배우들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주연급으로 발탁된 영화 《이 소년의 삶》에서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로버트 드 니로를 압도하는 연기력을 보여주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 해 개봉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길버트 그레이프》(1993년)에서는 조니 뎁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 어니 역할을 열연하며, 실제로도 정신지체아가 아니냐는 오해를 살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영화 평론가 자넷 마슬린은 그의 연기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날카롭고 필사적으로 강렬한 연기”라고 평했다. 이 작품으로 만 18세의 나이에 시카고 영화 비평가협회상, 내셔널 보드 오브 리뷰(전미 영화 비평가위원회상) 로스 앤젤레스 영화 비평가협회상에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 남우조연상(드라마 부분)과 미국 아카데미상 최우수 남우조연상에 첫 후보 지명되었다.

     

    1996-2001년: 청춘 스타로서 성공한 역할들

    1995년 디카프리오는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는데 샤론 스톤, 진 해크먼, 러셀 크로 등과 공연한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쿽 앤 데드》와, 마약에 중독된 청소년을 연기한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외에도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의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베를렌동성애 관계를 다룬 영화《토탈 이클립스》에서 그는 뇌쇄적 매력의 천재시인 랭보를 연기하였다. 이 영화의 제작 초기 리버 피닉스가 먼저 랭보 역할에 캐스팅 되었지만 도중 사망하였다. 그는 어릴적부터 절친한 케빈 코널리, 토비 맥과이어와 독립 영화 《던스 플럼》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200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 되기도 했다.

    1996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이자 1968년에 이미 영화로 제작된 것의 1990년대 MTV 스타일의 화려한 현대적 배경으로 배즈 루어먼 감독이 새롭게 재해석한 영화로미오와 줄리엣》(1996년)에서 반항적인 로미오 역할을 연기해 그의 폭발할 듯한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기획 초기때부터 루어먼 감독이 그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한 것으로 알려졌고, 디카프리오가 본격적으로 청춘 스타의 길에 들어서게 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 해 말에 제리 작스 감독의 가족 드라마 영화 《마빈의 방》에서 로버트 드 니로와 재회하였다. 이 영화는 스콧 맥퍼슨이 각본을 썼고, 그는 어머니의 집에 불을 내는 골칫거리 아들 행크 역할을 맡아 메릴 스트립, 다이앤 키턴과 공연하였다. 1997년 제임스 캐머런감독의 대작 영화타이타닉》으로 데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차츰 자신의 연기력보다 외모에 관심을 보이는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에 불만을 느끼게 되었고, 청춘 스타로서 큰 인기를 얻은 이후 그에게 들어오는 배역들은 하나같이 가볍고 뻔한 종류의 역할들이 대부분이었다. 캐머런 감독으로부터 《타이타닉》의 잭 도슨 역할의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가난한 화가와 상류층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디카프리오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처음에는 거절을 하였지만 이전부터 그의 연기적 재능을 눈여겨본 캐머런이 적극적인 구애로 최종 출연이 이뤄졌다.

    이 영화는 1997년 12월 19일 미국 전역에 개봉하여 전 세계에서 21억 8,537만 달러의 엄청난 흥행수입(2009년 영화 《아바타》 개봉전까지 12년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을 거두었고, 그는 두 번째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총 14개 부문에 후보 지명되며 11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벤허》,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과 더불어 역대 미국 아카데미 최다 수상 기록에 해당하지만 그는 후보에 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여 자존심을 구겼고, 이 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의 엄청난 상업적인 흥행으로 디카프리오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톱스타이자 인기 배우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0년대 중후반 그는 전 세계의 꽃미남 아이콘으로 미국을 넘어 유럽, 아시아 전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조각같은 외모와 전형적이지 않은 매력으로 10대 소녀부터 20대, 30대의 젊는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당시 전 세계가 '레오 신드롬'에 빠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재미있는 일화로는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 후보 지명에서 제외 된에 반발한 200명 이상의 그의 팬들은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MPAS)에 항의하기 위해 연락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1998년 랜들 웰러스 감독의 영화 《아이언 마스크》에서 루이 14세와 철가면을 쓴 채 지하 감옥에 갇힌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 필립의 1인 2역을 연기했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비평가에게 혹평을 받았고 골든 래즈베리상에서 두 역할로 최악의 커플상을 받기도 했다. 그 해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셀러브리티》에서는 노개런티로 출연을 자청하였고 그는 이 영화에서 괴벽을 일삼는 난폭한 성격의 젊은 톱스타 브랜던 역할을 연기하였는데, 불과 10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0년 알렉스 가랜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대니 보일의 《비치》에서는 틸다 스윈턴, 비르지니 르두아앵, 기욤 카네와 공연하였고, 미국에서 배낭 하나만 매고 태국의 비밀의 섬에 모험을 찾는 청년 리처드를 연기했다. 하지만 전작 《아이언 마스크》와 마찬가지로 비평가에 혹평과 흥행에서도 실패를 거듭하면서 디카프리오는 첫 슬럼프를 겪게 된다.

     

    2002-2007년 : 마틴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가 되다.

    디카프리오는 이전의 청춘 스타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였고, 1840년대 초반 뉴욕을 배경으로 원주민들과 아일랜드 이주민들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과 혈투를 통해 미국 건국 초기의 어두웠던 그림자를 그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서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연기한 빌 더 부처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암스테르담을 연기했다. 이 영화에서 평론가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결과적으로는 대니얼 데이루이스로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다소 가려졌지만 그동안의 '청춘 스타' 이미지에서 진정한 연기자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신호탄이였다. 그 해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는 1960년대 실제로 일어 난 희대의 사기극을 경쾌하게 그린 작품으로 톰 행크스, 마틴 신, 크리스토퍼 워컨 등과 공연하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변호사, 의사, 조종사 등으로 신분을 바꾸며 전 세계를 돌며 사기행각을 벌인 10대 소년 프랭크를 연기했다. 영화는 비평가의 호평을 받았고 전 세계에서 3억 5,11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타이타닉》 이후 디카프리오의 출연작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영화이다. 그는 세 번째로 골든 글로브상에 후보 지명되었다.

    2004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 《에비에이터》를 통해 실존 인물인 하워드 휴스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흠잡을 데 없는 명연기로 생애 처음으로 골든 글로브상 남우주연상(영화 드라마 부분)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지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는 제이미 폭스에 밀려 안타깝게 수상의 기회는 놓쳤다. 하지만 데뷔 이래 미국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첫 지명되는 쾌거를 이뤘다. 2006년 시에라리온의 '분쟁 다이아몬드'(전쟁 중에 불법으로 채굴되어 밀수되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에드워드 즈윅감독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대니 아처 역할을 연기했다. 디카프리오는 발음하기 어려운 아프리칸스어를 무리없이 구사했다.

    같은 해 개봉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세 번째로 작업한 영화디파티드》는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5개 부분 후보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분을 수상하였다. 영화는 홍콩의 범죄, 스릴러 영화 《무간도》를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리메이크한 것으로 전 세계에서 2억 1,37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그는 이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 받아 새틀라이트 어워즈(국제비평가협회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여러 비평가협회상과 스크린 액터 길드 어워즈(미국 배우 조합상), 골든 글로브상 등 에 후보 지명 되었다. 특히 골든 글로브상미국 배우 조합상(스크린 액터 길드 어워즈)에서는 《디파티드》와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모두 연기상의 후보에 올랐고, 디카프리오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생애 두 번째로 미국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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