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논쟁적인 감독중의 한 명,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다. :: 예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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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욱, 논쟁적인 감독중의 한 명,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다.
    인물 이야기 2017. 6. 24. 01:14

     

     

    박찬욱, 논쟁적인 감독중의 한 명,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다.

     

    박찬욱(한자: 朴贊郁, 1963년 8월 23일 ~ )은 대한민국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영화 제작자이다. 1983년 영화 평론가로 첫 등단하여 이후 9년간 영화평론가 활동한 적이 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사이에 이무영 감독과 함께 '박리다매'란 이름의 공동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영화사 모호필름 (Moho Film)의 설립자이자 대표이다.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미쓰 홍당무》, 《박쥐》 등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또한 자신의 작품중 많은 작품의 각본을 썼다.

    2003년 영화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2009년박쥐》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학창 시절

    박찬욱은 1963년 8월 23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건축과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에 전시회를 많이 다녔고, 미술에 관심이 많아 미술사학자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박찬욱의 동생은 설치미술가 겸 미술 평론가인 박찬경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술사학자의 꿈을 가지고 서강대학교 철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재학 중 도서관에서 영화 원서를 많이 읽게 되었고, 영화 동아리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영화를 많이 보게 되면서 영화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한 교수가 작은 영화 상영회를 하던 중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보여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히치콕의 영화에 매료되었다. 이후에는 비교적 덜 유명한 영화를 찾아다니게 되었고, 아벨 페라라, 핼 하틀리,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들의 작품이 좋아지게 되면서 히치콕의 영화는 너무 완벽성을 추구하는 영화로 느껴졌고 이후에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기술이나 시나리오도 없이 찍은 것 같은 거친 느낌의 영화에 더 매료되었다. 이후 다양한 영화를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졌다.

     

    영화인으로의 삶

    대학을 졸업한 후 이장호 감독의 제작사였던 '판 영화사'에 연출부의 일원으로 들어갔다. 연출부에서 곽재용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곽재용의 감독 데뷔작 《비오는 날의 수채화》의 조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독립영화처럼 찍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 현장의 어려움으로 조감독을 그만 두었고 영화인의 길을 포기할 생각도 했으나 당시 구상중이던 각본만 완성하기로 한다. 그러나 각본을 완성한 후 다시 영화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느껴 영화의 길에 들어서기로 한다.

    이후 작은 영화사에 들어간 박찬욱은 1992년 그의 첫 영화인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영화계에는 낯설었던 B급 영화 정서에 기반한 이 작품은 영화팬들에게는 화제가 되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자신이 감독한 첫 번째 영화 이후 박찬욱은 당시 넉넉치 않은 형편으로 인해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1997년에 두 번째 작품 《삼인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거칠고 난폭한 줄거리로 구상했으나 중간에 제작사가 바뀌고 시간을 끌게 되면서 그가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달라지면서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실패했다.

    《삼인조》의 실패로 어려움에 처한 그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제작자를 설득하다가 당시 명필름 심재명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심재명 대표로부터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박상연의 소설 'DMZ'를 영화화 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감독을 제안받게 되고 소재나 미스터리 느낌의 줄거리에 끌려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의 감독을 맡았다.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와 유머가 살아 있으면서 사회적 의미도 담고 있어 관객의 호응을 받았으며 58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이 영화로 박찬욱은 경력에 큰 획을 그었고, 영화계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이 영화로 2000년 제2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2001년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도빌 아시아영화제 작품상, 제38회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다.

    한편, 박찬욱에게 '웰메이드 상업 영화'을 넘어서는 개인적 색깔이 드러나는 작품을 기대하던 많은 팬들에게 2년 후에 그가 감독한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작품이었다. 극도로 비타협적이고 비주류적인 정서로 가득한 이 작품은 흥행 면에서는 실패했으나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의 작가로서의 지위도 공고히 해 주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으로 국내에서는 2002년 제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국외에서는 2002년 이탈리아 필름느와르 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 2003년 우디네극동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였다.

    다음해인 2003년 박찬욱은 최민식을 주연으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올드보이》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다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최민식을 포함한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결말의 반전 및 흥미있는 줄거리로 한국에서 관객수 326만을 기록한다. 박찬욱은 이 작품으로 2004년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2005년 박찬욱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발표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복수를 주제로 하여 일명 '복수 삼부작'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세 작품은 공식 시리즈는 아니며, 처음부터 삼부작으로 기획된 것도 아니었으나 연달아 두 번의 복수극을 만들게 된 박찬욱 감독이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복수 3부작'에 관해 생각해냈고 《친절한 금자씨》를 만듦으로써 그것이 실현 되었다.

    2006년 63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2007년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제57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2009년 5월 25일 62회 칸 영화제에서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여, 칸 영화제 2회 수상을 기록하는 영광을 얻었다.

    2011년 1월에는 세계 최초로 아이폰 4만으로 촬영한 단편 영화 《파란만장》을 개봉하여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평가

    2006년 현재 박찬욱은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감독의 하나로 수많은 나라에 열혈팬과 극단적 비판자를 동시에 갖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파산' 운운하며 혹평을 가했고, 프랑스의 카예 뒤 시네마는 자신들이 지지하던 홍상수(로 대표되는 고답적 아시아 아트하우스 무비) 대신 (B-무비 정서의 스릴러 감독인) 박찬욱이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에 실망을 감추지 않으면서 '가장 과대평가된 한국 감독'이라고 비판하였다.

    반면에 로저 이버트는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킨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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